일기

과잉보호

키오형제맘 2025. 5. 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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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둘째가 유치원 체험학습을 하는 날이다. 

오전시간에 

근처 지하철역에서 표를 구입하고, 개찰구를 통과하고,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과정을 체험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 있었을 땐,

나의 불안한 생각들을 잠재워줄만한 안전장치들이 있었다. 

셔틀버스는 무조건 안전벨트를 해야하고,

아이들이 다 내렸는 지 확인을 한 후에 문을 닫을 수 있다.

우회전 하는 차들은 보행자 신호에는 무조건 일단 정지를 해야 한다. 

지하철 승강장에는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어 혹시 모를 낙상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이런 보장된 안전들을 당연하게 누려왔던 나에게,

대만은 '안전' 측면에서 대단히 허술하다못해 미개한 수준이란 생각이 든다.

 

태어난지 6개월 쯤 보이는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앞 뒤로는 대여섯살쯤의 여자아이 둘을 오토바이에 태운 엄마를 본 적이 있다. 

이젠 놀랍지도 않고, 그저 한숨만 나온다.

이 나라엔 택시 승차인원 제한만 있고, 오토바이 승차인원 제한은 없는 걸까.. 

저렇게 애들을 태워야만 하는 엄마의 상황도 안쓰럽고, 

당연하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안쓰러웠다. 

 

오토바이가 많고, 교통법규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나라.

좌회전 신호와 보행자 신호가 같이 켜져서 내가 좌회전 하다가 길 건너는 사람을 칠 수도 있다.

반대로 내 아이들이 길을 건너다가 좌회전 해오는 차량에 치일 수도 있다.

당연히 보행자신호에 우회전 하는 차도 있다. 일단 멈춤이 아직 없다. 

오토바이 차선과 자동차 차선이 합쳐지는 곳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 경우엔,

오토바이들을 다 보내고 우회전을 해야 해서 

내 차는 교통체증을 유발하거나, 뒤에 따라오던 차가 멈춰있는 내 차를 칠 수도 있다. 

내가 우회전을 하다 내 뒤에서 직진하는 오토바이를 못보고 칠 수도 있다. 

대만에서 운전대만 잡으면 승모근이 올라온다. 

 

실제로 작년에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가 난적이 있다. 

내가 이곳에 온 고작 1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

다른 한국인 가족들 대부분이 크고작은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아이들을 등하교 시키는 짧은 시간동안 목격한 사고처리 장면도 꽤 여러번이다. 

이렇게 사고 건수도 많은데, 여기 국회의원들은 무얼 하는 지 모르겠다. 

 

다시 우리 둘째의 오늘 현장학습 일로 돌아가자면,

둘째 유치원의 셔틀버스는 안전벨트가 없다.

모든 현장학습을 안보내고 싶은 1차 이유이다. 

오늘 지하철까지 걸어간다 쳐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많은 길이다.

지하철엔 스크린도어가 없다. 아 지하철이 아니다. 지상철이다.

3층 건물 높이의 고가도로를 달리는 지상철인데, 

승강장이 야외에 있다.

아이들이 매달려 놀기 딱 좋은 내 명치 높이의 철창살에는 기대지 마시오 라고 쓰여있다. 

안전바라고 해놓은 철창살 넘어로 아래를 쳐다보면 순간 너무 아찔하다. 

난 기차를 탈 때면 스크린 도어 없는 승강장과 부실한 철창살 사이 공간 어디쯤에 안전지대를 찾아 두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어야 했다. 

지진도 많이 나는 나라에 고가 도로는 왜이리 많은지.. 

그런데, 그런 지하철에 아이들 14명을 인솔해서 승하차 체험을 한다고 하니

안전교육을 내 아이의 목숨을 걸고 하는 느낌이다. 

어느 조현병 환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내 아이를 달려오는 지하철에 던질 것만 같은 상상이 계속되어

신경이 쇠약해진 상태로 잠이 들었더니

꿈에서 내가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너희 나라는 스크린도어도 없어!! 그래서 현장학습 안보낼거야! 라고 영어로 외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등교 준비로 바쁜 와중에 내 머리는 계속 체험학습에 대한 생각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결국에 "갑작스러운, 하필이면 내 아이에게 닥친 개죽음"인 건데,

내가 발생할지 안할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로부터 보호하고자 아이를 집에 가두는 것을 평생 할 수 있을 까?

매일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는 일 부터가 불의의 사고로의 노출인데?

오늘 만약 아이가 체험학습을 갔다가 사고가 난다하면,

나는 나를 책망할까..? 그냥 집에서 키울껄? 

별의 별 생각을 다하다가 결국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

세상이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 아이가 세상 속에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차단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노력이 불안감을 이긴다.

오늘도 불안함을 억누른채 아이의 작은 손을 쓰윽 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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