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극복의 시기, 충동 억제가 안되는 나날들.
아이는 간혹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무슨 일 있어?"
"응. 근데,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
"아.. 생각하고 싶지 않구나. 그래 알았어~ 말하고 싶을 때 얘기해 줘~ "
아이는 보통 좋아하는 학습만화를 보며, 좋지 못했던 기억에서 벗어나려 한다.
난 평소에 주지 않던 간식들을 쓰윽 아이 앞에 갖다 놓기도 한다.
오랜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금세 아이는 학습만화의 내용에 심취했고, 간식이 주는 달콤함에 쓴 기억을 모두 지워냈다.
난 어릴 때부터, 안좋은 기억을 오래 곱씹는 성격이었다.
특히 엄마와 다툰 날은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은 나와 엄마를 링 위에 올려두고 계속 싸우게 했다.
겨우 잊을 만 하면 또 기억을 끄집어 올려냈다.
과거를 떠올리느라 미래를 볼 힘을 잃을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릿속은 흐리멍덩해졌다.
아이들이 이런 나보다는,
이미 끝난 것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이 명확한 아빠의 성격을 닮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을 하는 예민함은 기어이 날 닮았다..)
내가 다시 내 어릴 적 못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아이의 책가방을 건물 1층 로비 소파 위에 두고선 이틀 동안이나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책가방을 누가 가져가 버렸고,
그날 근무했던 경비원은 그 날 이후로 보이지 않았기에,
난 그 책가방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깝긴 하지만 정말 별것 아닌 일이다.
아이도 그다지 미련이 없는 눈치이고,
나 또한 새로운 책가방을 사면 깔끔하게 (내 마음도) 포기가 될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근데 도무지가 이 새로운 책가방을 살 마음이 안 들고,
그렇다고 잃어버린 책가방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닌 데,
'책가방 안에, 물병, 교과서, 알림장, 학교 체육복 등이 있으니 우리 아이의 가방이란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거야.'
라는 희망과 동시에,
'아니 안에 이름이랑 학교랑 다 있는 데 그걸 그냥 가져갔다고?? " 라며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참교육 해줄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딴 생각으로 3일을 끙끙 앓고 있으니, 나 자신은 또 얼마나 한심한지..
한심하다는 걸 모르지 않다.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문제다.
이렇게 자기 조절 능력이 없다 보니, 자존감? 그게 뭔데? 내가 너무 한심해 죽겠다..
어릴 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이나, 여전히 난 내 기분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른다.
"그게 뭐라고, 빨리 털어 버려."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