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책가방.

일기

돌아온 책가방.

키오형제맘 2025. 4. 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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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쯤 나는 아이의 책가방을 잃어버렸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고, 사각지대에 가방을 둔 채로 귀가했고,
그날로 가방은 사라져 버렸다.
 
난 한국에서 잃어버렸던 물건을 되찾은 경험이 별로 없다. 
아니 그냥 없는 것 같다.
남의 물건(자전거는 제외)을 절대로 훔쳐가지 않는 나라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등신이 된다. 
물건을 잘 챙겼어야지. 어디다가 정신을 판거야? 찾아와!!
엄마의 불호령에
울면서 동네 곳곳을 찾아다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못찾았다고 또 혼나는 게 내 정서였다. 
 
그 날 이후 보이지 않았던 야간 경비원.
그 사람이 아이의 책가방을 가져갔으며,
책가방은 회수하였는 데,
책가방 안에 들어있던 노트 몇권, 포켓몬카드, 학교티셔츠 등은 분실이 되었다고 
관리사무실 소장이 한국말로 번역한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을 물어 보았는 데,
생소한 영어 단어여서 팅부동(못 알아 듣습니다 의 중국말)이라 이야기 하니. 
"보상"  이라고 번역된 단어를 보여주었다.
아.. compensation.. 아는 단어인데 이게 또 실전에선 안들린다.
 
나는 내 정서대로,
괜찮다. 가방이 돌아와서 너무 기쁘다. 다른 무엇도 바라지 않으며, 그 사람에게 어떤 처벌도 원하지 않는 다.
라고 이야기 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서도
표정은 영..의아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는 데,
아니나 다를까 가방을 돌려받고, 2주가 지났을 시점,
이번엔 경비업체의 사장이라는 젊은 남자가 나를 만났으면 한다고 전화가 왔다.
젋은 사장 답게 영어를 곧 잘 했고,
아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속으로 다짐 할 때 쯤,
경비업체와 내 이름로 된 합의서를 내밀었다.
 
나의 뜻대로 어떤 보상도 원치 않는 다는 것을 명확하게 써놓은 합의서에 나는 싸인을 해주었고,
닭육수팩 세트 (우리나라로 치면 사골국물팩 같은)와,
분실된 포켓몬카드 대신이라며, 포켓몬 카드 ex 한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그렇게 마무리 되어 지나간 일이
또, 굳이, 이주일이나 지난 이 시점에 생각이 났다. 
 
나는 당연히 잃어버린 것을 쉽게 포기했다.
특히 지갑, 가방
 "여기 성함과 연락처 써주세요. 찾으면 연락드릴게요. "
(이 말은 나는 당신에게 해줄 것이 없네요. 기대하지 말고 썩꺼지세요. 와 같다.)
한국에선 정신 놓고 다닌 내 잘못이 아마 90% 쯤 되는 것 같다. 아니 100% 내 잘못이다. 
 
"여기 성함과 연락처 써주세요"
cctv로 사각지대에 책가방을 놓고 아이와 놀다가 빈 손으로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찍힌 것을 확인한 날,
직원은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아. 또 못찾겠구나. 나는 그렇게 또 포기를 했다.
그리고 5일만에 책가방을 찾았다고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직원, 그리고 경비업체에서 100% 잘못한 것이기에 보상을 의논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온 나의 대답이 "깜박하고 책가방을 놓고온 내 잘못이야~" 였으니,
이들에게는 황당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연락처를 물어봤던 직원에게, 혹시 cctv를 계속 보고 범인을 찾아낸것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타국에서 온 이방인의 물건 쯤, 같이 일하는 직원이 슬쩍 가져가도 모른척 할 수도 있겠지.
라고 잠시나마 의심하고, 불신했던 나를 반성했다. 
그들은 그 날 경비(나도 이 경비원을 의심했다)를 의심하고, 계속 cctv를 보고,
그 경비원을 직접 찾아가 책가방을 돌려받고 나에게 사과하는 영상까지 찍어왔다. 
한국에선 전혀 느껴보지 못한 정성에 어안이 벙벙해서
사건을 마무리할때 까지 그들이 나를 온전히 피해자로 대해줬단 사실
합의서에 싸인을 해주고, 이주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사건을 곱씹으면서 깨달았다. 
 
아이의 첫 사회생활의 진출을 축하하는 누군가의 선물이었고,
아이의 만9살 인생 중, 무려 3년이나 함께 한 세월을 담았던,
그리고 한 번 없어졌다 다시 돌아온 이 가방은
한동안 내 인생 모퉁이 어딘가에 묵직하게 놓여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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