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한가득 사 온 잡채용 오뚜기 당면의 유통기한이 임박했고.
언제 대소변을 가릴지 몰라 박스채로 쌓아 가져온 기저귀도 여전히 창고 한구석에 쌓여있다.
어제와 그제, 양껏 당면을 불려 잡채를 볶아서 한바탕 잔치마냥 배를 채웠다.
기저귀는 더 오래 묵기 전에 이웃에게 나눔을 해야겠다 다짐을 한다.
이렇게 한 번 묵은 짐을 비우며,
한국에서 쟁여온 내 불안감도 같이 떨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잘 지내줘서 고맙다. 또 마음을 전한다.
감사함을 표현하면, 아이들이 혹시나 '잘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까 봐 걱정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이 표현을 하게 된다.
도무지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엄마가 되었다.
첫째 아이는 이곳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둘째 아이는 현지언어와 영어를 같이 쓰는 유치원에 다닌다.
첫째 아이는 지난 학기 때,
친구들이 순진하게 뱉어내는 장난과 폭력에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지만,
담임선생님이 대응을 잘해주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많이 호전되었다.
한번씩 "오늘은 학교에서 영어 단어 몇 개 써봤어?" 물어보면,
"한 번? 두 번?"이라고 답하던 것도,
어제는 "10문장 넘게 말했지!, 오늘은 20문장도 될걸?"이라고 대답했다.
어제가 딱 결혼기념일이었는 데, 나에게 이 대답이 꽃다발 보다 귀한 선물이 되었다.
마음의 평화는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려나 보다.
하교 후 아이의 표정 하나에 하릴없이 무너져 내렸던 10개월의 풍파가 엄마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며 나를 돌아봤던 지난 시간들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타고난 글재주는 없지만, 다른 사람을 '완벽의 기준'으로 두지 않겠다 다짐하고 나니,
내 글이 잘 쓴 글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 타지 생활 기록을 10개월이 지난 지금, 시작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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